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고민하고 기업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가 없다고 불만이다. 이 같은 미스매치 원인은 디지털 문명 대전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한민국에는 선진국 혁명이 겹쳤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 그래서 아직까지 사회 시스템은 개도국인데 경쟁은 선진국과 해야 하는 유일한 나라,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주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노멀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대전환으로 모든 일자리는 강력한 디지털 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동시에 선진국의 제품 및 서비스와 경쟁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능력까지 필요로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에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괜찮은 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디지털 리터러시는 물론이고 전문적인 능력까지 뛰어나야 한다. 좀 마음이 끌리는 회사의 구인 광고를 보면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능력을 요구하는 곳이 태반이다. 개발자는 아니더라도 SNS 마케팅 유경험자, 디지털 커머스 기획 유경험자, 메타버스 기획 유경험자, 빅데이터 분석 유경험자 등 온통 학교에서 맛도 못 본 경력 요구가 허다하다.
인재를 뽑는 조건도 엄청 까다로워졌지만 설령 취업했다고 해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과연 이 회사에서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회사에 입사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높은 전문성과 디지털 능력을 요구한다. 실제로 취업한 직장인들의 대학원 진학 문의가 최근 급격하게 늘고 있다. 그만큼 회사 업무가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취업자도 이렇다는 얘기다.
사업을 시작할 자금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평균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실패할 확률이 92%라면 도전하는 게 오히려 무모해 보인다. 그래도 취업이 어려우니 자꾸 기웃거리게 되고 정부에서도 청년 창업하라고 여러 지원책을 제공하다 보니 뛰어드는 청년들도 꽤 많은 편이다. 최근 전통시장과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전국 각지의 청년몰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려 5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지만 결국 대부분 가게가 폐업했거나 개점 휴업 상태가 됐다. 그만큼 창업이란 어려운 일이다. 좋은 직장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창업은 청년에게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좋은 대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실패 확률이 높은 창업에 무조건 청년들을 내모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도 모든 데이터를 감안할 때 이제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판단된다고 선언했다. 미국 US NEWS에서는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감안해 세계 강국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8위에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모노클이라는 잡지에서는 매년 각 국가의 문화적 매력도를 기반으로 소프트파워 랭킹을 발표하는데, 2020년 한국이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세계 10대 선진국 안에 당당하게 입성했다고 이야기할 만하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업에는 지옥문이 돼버렸다. 이제는 선진국들과 나란히 급이 다른 경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수십 년간 우리는 개도국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도크 하나 없던 나라가 엄청난 규모의 유조선을 짓고, 그 어렵다는 자동차도 우리 손으로 만들고, 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건설 공사도 기적처럼 성공시켰다.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면서 반도체, 휴대폰, 컴퓨터, 가전제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도 꾸준히 수준을 높이며 성장시켰다. 디지털 플랫폼도 미국에 뒤질세라 카카오, 네이버 등 많은 기업이 성공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그런데 이 모든 발전은 선진국의 상품을 추격하면서 이뤄낸 것들이다. 그것이 개도국 산업의 핵심이니까.
특히 우리는 일본의 산업 발전 모델을 그대로 카피하며 온 국민이 열심히 달려왔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가전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 사회 전체는 아직도 개도국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만들고 경쟁해야 할 상품은 선진국 수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청년들이 막상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 시스템은 개도국의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 구조적인 미스매치를 해결할 수 있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뉴스를 보면 3나노 공정, 1나노 공정을 누가 먼저 개발하는지를 두고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 중이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는 일본과 독일이 포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조 공정도 어렵지만 반도체 설계는 정말 창조적인 작업이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학교에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투자가 없는 대학들이 무슨 수로 그 비싼 수십억원짜리 소프트웨어를 사서 교육할 수 있을까? 내연기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자동차회사에 가면 전기자동차로 자율주행차를 제작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레이저, 라이더, 레이더에 인공지능(AI)까지 다 꿰고 있어야 개발할 수 있는 건데 학교에서는 본 적도 없다.
디지털 문명 교육은 유튜브 같은 인터넷 자원 활용이 필수적이다. 학교의 주입식 수업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육 콘텐츠는 물론이고 교육 방식까지 모두 대전환이 필요하다.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계의 지식과 능력은 모두 기준의 대전환이 일어났는데 교육 기준과 내용의 대전환이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이 된다. 청년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 리더들의 의무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에 교육과정 혁신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가려는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대한 피상적 인기 정책만 보일 뿐이다. 이미 그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검색하는 인류는 이미 메타버스며, 블록체인이며, NFT(대체불가능토큰)며 미래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배워가고 있다.
■ 최재붕은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인류문명사적 변화 속에서 비즈니스의 미래를 탐색하는 공학자다.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 인문학, 동물행동학, 심리학과 비즈니스의 융합 등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활약을 이어가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 4차 산업혁명 권위자다. 베스트셀러 《포노사피엔스》를 통해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2014년부터 기업, 정부기관 등을 대상으로 2000회 이상 디지털 문명 대전환에 대한 강연을 이어 오고 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포노사피엔스 코드 체인지9》 《코로나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관련뉴스